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의정사태로 대한민국 공공의료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환자를 진료해도 적자를 면키 어려운 구조 탓에 공공병원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는 모습이다. 서울특별시병원회는 최근 보건의료 전문신문 데일리메디와 공동으로 '위기의 공공의료, 해결책 모색 정책좌담회'를 개최했다. 고도일 서울시병원회 회장이 좌장을 맡고 패널로는 ▲이현석 서울의료원 원장 ▲이재협 보라매병원 원장 ▲표창해 서남병원 원장 ▲조인수 한일병원 원장 ▲김병관 혜민병원 원장 ▲김태희 서울특별시 시민건강국장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우리나라 공공병원이 처한 현실과 함께 '공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된 이번 좌담회 내용이다.
[기사제공 데일리메디]
고도일 서울특별시병원회 회장(좌장)
코로나 19 전담병원으로 활약했던 공공병원들이 의정사태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병원 상황은 어떠한가?
이현석 서울의료원장
코로나 19 유행 당시 다른 병원으로 차트를 복사해서 보냈다. 코로나 19가 장기화하면서 무려 3년 동안 일반 환자를 보지 않았다. 2022년 봄 일반 환자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회복되기도 전에 의정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의료원 전공의 비중은 35% 정도였는데 모두 사직했다. 코로나 19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어서 국민 지지도가 있었지만, 이번 의정사태에서는 그게 어렵다. 이제 직원 월급 주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대학병원이 못 받는 환자들을 받고 있어 중증 환자 비율이 50%에서 97%까지 치솟았다.
이재협 보라매병원장
의정사태로 타격이 컸다. 남은 교수들이 당직을 서고 있다. 젊은 교수들은 신분이 안정되지 못하니 사직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방병원보다는 사직 규모가 적긴 하지만 충원을 떠나 재직 중인 교수들 사직을 막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의정 사태가 길어지다 보니 힘들고 지쳐서 사직하는 교수들이 많다. 대형병원들이 인력 충원에 나서면서 주변 인력도 흡수하고 있다.
고도일 회장
의사 채용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결국, 급여를 통해 인력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하고 있나?
이현석 서울의료원장
공공병원은 총액임금제를 적용받는다. 정규직의 경우 한 사람 급여를 올리면 다른 사람 월급이 줄어든다. 때문에 계약직 채용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연봉을 조정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을 계약직으로 조정해야 의료진 간 갈등을 피할 수 있다.
이재협 보라매병원장
서울대병원 급여체계를 따른다. 기존 의료진과 격차가 커지면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공공병원이지만 대학병원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연봉 책정 부분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에 한계가 있다.
표창해 서남병원장
일반의를 많이 채용했다. 사직 전공의를 데려와 중환자실 당직을 세우고 있다. 채용이 쉽지는 않다. 제자, 후배 등 인맥을 동원해 어렵사리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을 구했다. 현재는 입원 전담 병동을 만들어 응급실을 가동하고 있다.
고도일 회장
민간병원이지만 공공병원 역할을 했던 곳들도 있다. 상황이 어떤가?
김병관 혜민병원장
코로나 19 유행 당시 우리 병원 진료 역량을 높게 평가한 서울시 시민건강국에서 먼저 거점전담병원 역할을 요청해 왔다. 당시에는 파견인력 등 도움을 받았지만 이후 전담병원에서 해제되는 시기 환자가 많이 줄었다. 이후 적자가 많이 쌓여 있었다. 단계적으로 일반병상을 확보했다. 의정갈등으로 상급종합병원 기능이 떨어지면서 일반 환자가 많이 오며 회복은 됐지만, 2~3년간의 임금상승률을 상쇄하는 수준은 아니다. 적자를 안 만드는 수준의 진료만 하고 있다.
조인수 한일병원장
사직 전공의를 일반의로 채용해 밤에 당직을 서게 하고, 응급의료센터는 13명을 다 확보해 올해 초부터 정상진료 중이다. 응급실을 잘 가동하고 있어 이 시기를 버티면 안정적일 것 같다. 다만 리모델링 등을 제외하고는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받는 지원이 없다. 병원 경영으로 수익을 내야 한다. 동시에 서울 도봉·강북구 유일 종합병원·응급의료센터로서 주민 70만 명을 다 봐야 한다.
고도일 회장
분만·소아 응급실 표류사고가 많다. 공공병원이 이를 감당할 수 있나?
이현석 서울의료원장
병원 20~30곳을 돌다가 서울의료원에 와서 분만하는 경우도 있었고, 지적장애인 산모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결국 우리 병원에 와서 분만한 경우도 있었다. 현재 분만 담당 인력은 2명인데, 추가 채용은 힘겨운 상황이다. 연락이 오면 밤에 대기하면서 분만 기능을 유지 중이다.
김병관 혜민병원장
민간병원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도 응급실 운영은 공공이 하는 경우가 많다. 기타 진료를 민간에 전폭적으로 맡기고 공공은 응급의료를 보고, 응급상황이 지나면 전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서울의료원이 응급의학과 진료 역량을 전체 진료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올리고, 2~3일 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면 환자들이 밤새 응급실 뺑뺑이는 막을 수 있다.
이현석 서울의료원장
공공병원이 응급의료를 하면 좋다는 의견에 공감은 하지만 결국 응급실은 '게이트 키퍼'다. 응급은 응급실이 다루고 작은 진료는 넘겨야 한다. 배후 진료가 얼마나 탄탄하냐에 따라 응급실이 유지가 된다.
고도일 회장
지자체가 바라보는 현재 의료대란 상황은 어떤가?
김태희 서울시 시민건강국장
코로나 19 회복기 때 충분한 재정 지원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적자가 커졌다. 서울의료원과 보라매병원은 의정사태로 적자가 더 늘었다. 올해 서울시 공공의료 부문에서 1000억 원 이상 적자가 예상된다. 과거 대비 3배 이상인데, 지자체가 모두 이를 부담하는 건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도 적자가 얼마가 줄어들지에 대한 금액 불확실성도 크다.
고도일 회장
공공병원은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고충이 클 것 같은데
표창해 서남병원장
의료대란 이후 공공병원 중증 비율이 올라간 것도 불균형한 수가 구조에 기인한다. 손이 많이 가고 수가가 높지 않은 수술을 계속하게 되는데, 수가가 높은 영역은 더 올려주겠다고 하고 묵묵히 일하는 쪽은 그대로. 의료가 정치적으로 이슈화되는 게 문제다.
이재협 보라매병원장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의 맹점은 기존 상급종합병원 체제에 포함돼 있지 않지만, 그 역할을 하던 병원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의정사태 속에서도 역할을 하는 공공병원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수가가 있어야 한다. 공공병원은 기존의 상급종합병원과 경쟁하는 구도에서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의료전달체계와 수가 시스템을 개편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중증도가 높게 유지되는 공공병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 시스템보다는 공공병원만의 새로운 수가 틀이 필요하다. 재원을 더 투입하는 게 아니라 공공병원이 열심히 해서 수가체계 하에서 정상 경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현석 서울의료원장
같은 질환으로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은 의료비와 공공병원의 의료비를 비교해 공공의료 가산 수가를 신설하는 게 필요하다.
김태희 서울시 시민건강국장
공공의료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공공성이고, 수익성은 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누구도 공공병원에 돈 벌어오라 한 적 없다. 공공병원 적자는 서울시가 지원하고, 열심히 했는데 적자가 났으면 수가로 보장하는 게 원칙적으로 맞다. 공공 기여도에 대한 보상은 당연하지만, 근본 지원책은 수가 정책으로 보완됐으면 한다.
고도일 회장
공공병원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어떤 방향 전환이 필요한지 제언해달라
이현석 서울의료원장
공공병원은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우리 병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보호자 없는 환자안심병동'을 시행하고 전국에 노하우를 공유했다. 이는 지금 간호간병통합서비스로 진일보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공공병원이 나아갈 방향을 선도하는 것도 우리의 책무다.
조인수 한일병원장
잘 구축해가고 있는 응급실과 우리가 잘 해왔던 화상 분야를 특성화할 계획이 있다. 지역사회에서 강북·도봉 지역을 담당하며 최종치료 병원으로 거듭나겠다. 선택적 특성화를 통해 역할 배분이 필요하다.
김병관 혜민병원장
공공병원도 전문병원처럼 특성화된 분야를 만들어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병원, 대형병원, 특성화 병원도 필요하다. 비급여 비율이 절반인 수준에서 수익을 내는 병원들이 있다. 공공병원도 전문화된 분야를 갖는 게 비급여 비율이 낮으면서도 수익을 내는 방법으로 보인다.
김태희 서울시 시민건강국장
환자를 보느라 생기는 적자와 환자가 오지 않아 생기는 적자는 다르다. 공공병원도 혁신이 필요하다. 민간병원과의 협력이 가장 좋은 모델이다. 임상데이터가 많은 민간병원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협력 연구가 잘 돼야 한다. 공공 역할을 수행하는 민간병원과의 협력방안을 마련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