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병원회
병원 in 서울

2022  
26호

홍창권
중앙대학교 의료원장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붕괴 직전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 말을 놓고 ‘너무도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위의 반박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몇몇 진료과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결코 지나친 우려의 소리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외과의 꽃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던 흉부외과, 그리고 기본 4과의 주역으로 수련의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외과, 산부인과가 언제부터인가 지원하는 전공의가 없고, 이런 현상은 이들 분야 전문의사 부족으로 이어져 병원들이 필요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소아청소년과 역시 이제 흉부외과나 외과, 산부인과에 못지않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언론에서 소아청소년과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보도한 기사 내용이 생각났다.

  “지방에서는 밤마다 소아, 청소년 응급환자들이 시‧도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대학병원들마저 상주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구하지 못하자 소아, 청소년환자를 시간제로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고 있는 병원들도 있다. 전국에 소아청소년과가 없거나 2곳 이하인 지역이 63곳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부족하다 보니 서울의 10대 종합병원들 가운데 6곳만이 한밤에 내원한 소아, 청소년환자를 온전히 치료해 줄 수 있다고 한다. 나머지 4곳은 인력이 부족해 온전한 치료가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소아, 청소년환자에 대한 온전한 치료가 가능한 병원들인 경우에라도 소아, 청소년환자 보호자들이 전화를 여러 번 돌려 병상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사가 있는 곳을 찾았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언론은 이같이 밝히면서 ‘소아 심장병이나 소아암 등 난치병을 다루는 병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 소아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전국적으로 68명에 불과하고, 소아 심장 전문의는 15명 정도로 소아 흉부외과는 거의 절멸 상태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

  이렇듯 누구나 필수 진료과로 알고 있는 소아청소년과의 의사 부족 현상이 어느 만큼 심각한지는 몇몇 대학병원들의 상황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경우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만 16세 미만 소아, 청소년 응급실 야간진료의 제한을 안내했다고 한다. 이 대학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진료 가능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변경한 것이다. 그 원인은 정원 3명인 이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가 전공의를 모집했는데 단 1명만 지원을 한 것이다. 그나마 그 전해에는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인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버티다가 한계에 봉착하여 그런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의 또 다른 한 대학병원도 병원 문 앞에 ‘한시적으로 소아, 청소년환자는 인근 병원 응급실 진료를 이용해 달라’는 안내문을 써 붙였다고 한다. 이 대학병원 역시 전공의 모집 시 지원자가 없거나 정원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이들 병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의 대학병원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들조차 이런 상황이니 일반 종합병원, 더구나 지방에 있는 병원들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근본적으로 의사들의 수효가 적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OECD 국가 중 인구 대비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심각하다’ 할 만큼 그 수효가 적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흉부외과나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몇몇 필수 진료과들의 전공의 지원이 너무도 적어 지금도 전문의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데다 앞으로 그 상황이 더욱 악화하여 갈 것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최근 자료를 보면 지난 2020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78.5%였는데 불과 그다음 해인 2021년에는 37.3%로 급감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앞으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지금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사가 단 한 명도 없는 시‧군‧구 지역이 7곳에 이르고 있다고 하며, 앞에서도 밝혔듯이 일반 종합병원은 물론 대학병원들에서조차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현상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역별 온라인 맘카페 커뮤니티에는 야간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묻는 글들이 빈번하게 올라오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의료체계의 붕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몇몇 필수 진료과의 전문의가 크게 부족한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한마디로 전공의들이 이들 진료과의 수련을 기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전공의들이 이들 진료과의 수련을 기피 하는 데는 만성적인 저수가 등 몇 가지 요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심각해진 소아청소년과의 경우에는 저수가에 더하여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당면 문제가 추가로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다는 것은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고, 교수들마저 사라져 결국 아이들이 제 때에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의 희망이며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아이들이 아플 때 언제 어디서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소아청소년과가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하거나 더 악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이들 필수 진료과들의 수가를 조금씩 올리거나 보조금을 주는 등 땜질식 처방을 해왔다. 그러나 이들 땜질식 처방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다.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와 같은 상황을 이미 겪었거나, 이와 같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을 도입했을 가능성이 큰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의 사례부터 종합적으로 분석, 연구하고, 이를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전공의 선발 및 운영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