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병원회
병원 in 서울

2022  
22호

현진해
(전 고려대학교 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

  “참, 인생은 짧은 것이여”
  한창 젊은 시절, 어른신들로부터 흔히 듣던 말이다. 당시만 해도 나이가 들게 되면 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저 흘려 듣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80 고개를 넘어서 당시 내가 어르신이라고 부르던, 그런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때 들었던 그 말들이 너무도 실감나게 내게로 다가온다.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마음은 젊었던 그 시절과 비교해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무엇보다도 겉모습이 누가 보더라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나이든 모습이고,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몸이 미처 따라 주질 않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스스로 나이 먹었음을 자각하게 한다.

  그런가하면 그야말로 한창 깃발 날리던(?) 시절에 했던 일들도 가물가물해져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40여 년 가까이 정을 쌓아 온 전직 의료전문지 기자로부터 의료원장으로 있었으면서 병원협회 임원으로 활동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컬럼 형식으로 써보지 않겠느냐는 요청을 받았다. 몇 번 고사하다가 할 수 없이 펜을 들긴 했는데 막상 무엇을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른지 도무지 생각이 잡히질 않는다. 그런 연고로 처음부터 ‘늙은이’ 사설부터 늘어놓게 된 것 같다.

  어쨌든 가물가물한 기억 속이긴 하지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또 판단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주어진 의료원장과 병원협회 임원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 나름대로 열심히 주어진 역할을 잘 해 냈다고 해서 그것이 의료원과 병원협회, 나아가 병원계 발전에 어느 만큼의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고려대 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 임명을 받고 취임한 것은 1999년 10월이었다. 그리고 2001년 9월 말 임기를 마칠 때까지 병원협회 임원으로서 활동했다. 당시 내가 앞서 언급했듯이 내게 주어진 협회 일에 나름대로 열심히 매달렸던 것은 협회에서 주어진 그 일을 해내는 것이 바로 내가 몸 담고 있는 의료원의 발전에도 직결이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의료원장 임기를 마치고 협회 일도 그만 둔 이후 협회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금도 2년여에 걸친 병원협회 임원을 맡아 수행했던 몇 가지 일들은 어제의 일처럼 기억을 되살리곤 한다. 당시 병원협회 임원들 모두가 다 열심히 참여하고 주어진 일을 잘 해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나중에 내가 전해 들었던 요즘의 협회 상황에 비해서는 그래도 많은 의료원장과 병원장들이 협회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병원협회에 대한 의료원장 또는 병원장 등 병원CEO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내가 현직에 있을 때보다 의료원장이나 병원장들의 병원 내에서의 주어진 일들이 엄청나게 늘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협회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이해는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병원협회의 회원병원들에 대한 영향력이 이전 만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전해 들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에 걸쳐 병원협회의 회원병원에 대한 역할이 참 대단했었다고 한다. 다른 어느 단체들에 비해 뛰어난 로비력을 발휘하여 모든 회원병원들이 기대하고 있는 바를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병원협회가 뛰어난 로비력을 발휘하여 회원병원들이 기대한 바를 어느 정도라도 충족시켜 줄 수 있었던 것은 회장을 비롯한 몇몇 특정 임원들의 뛰어난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병원협회를 구성하고 있던 여러 임원진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회무 참여와 협조의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은 바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요즘의 병원CEO들은 이전처럼 협회 회의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없지 않나 싶다. 자신의 역량을 병원에 쏟아 붓는다고 해도 부족할 만큼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마음은 있어도 협회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조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병원협회의 발전이 바로 회원병원의 발전에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병원협회는 누가 무어라고 해도 ‘회원병원들의, 회원병원들에 의한, 회원병원들을 위한’ 존재이며, 병원CEO 개개인이 바로 협회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병원CEO들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해 주겠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협회는 결국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개개 회원병원들에게 돌아갈 것 역시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병원협회 역사의 한 부분을 스쳐 지나온 선배 임원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병원협회 운영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회장을 비롯한 임원 모든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협회를 향한 조그만 관심과 협조가 바로 여러분들이 몸 담고 있는 병원에 보다 큰 혜택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것이다.